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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조·종지2017-07-04T10:15:54+00:00

종조 (宗祖)

태고 보우국사

太古普愚國師(1301∼1381)

본관은 홍주(洪州). 속성은 홍씨(洪氏). 첫 법명은 보허(普虛), 호는 태고(太古). 법명은 보우(普愚). 홍주(洪州: 현재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아버지는 홍연(洪延)이며, 어머니는 정씨(鄭氏)입니다.  

불교계의 통합과 정계(政界)의 혁신을 도모하였습니다.

13세에 출가하여 회암사(檜巖寺)광지(廣智)의 제자가 되었고, 가지산(迦智山)에서 수행하였다. 19세부터 만법귀일(萬法歸一) 화두를 참구하였고, 26세에 화엄선(華嚴選)에 합격한 뒤, 선(禪) 수행에 몰두하였습니다.

1330년(충숙왕 17) 용문산 상원암(上院庵)에서 관음기도를 하고, 1333년(충숙왕 복위 2) 성서(城西) 감로암(甘露庵)에서 정진하였으며, 1337년 불각사(佛脚寺)에서 원각경(圓覺經)을 읽다가 모든 알음알이를 타파한 뒤, 송도(松都)의 전단원(栴檀園)에서 무자(無字) 화두를 참구하던 중, 1338년 1월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 뒤 양근(楊根)의 초당에서 어버이를 봉양하며 1,700칙(則) 공안을 점검하였고, 1339년소요산 백운암(白雲庵)에서 「백운가」를 지었습니다. 1341년(충혜왕 복위 2) 중흥사(重興寺)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면서,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太古庵)을 창건하여 5년 동안 머물 때 태고암가 1편을 지었습니다.

1352년(공민왕 1) 궁중에서 설법하였으며 경룡사(敬龍寺)에 있었는데, 홍건적의 난을 피해 소설산으로 옮겼습니다. 1356년 왕의 청으로 봉은사(奉恩寺)에서 설법하였고, 그 해 4월 왕사(王師)로 책봉되어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습니다. 1362년 왕은 그를 희양산 봉암사(鳳巖寺)에 있게 하였고, 1363년 가지산 보림사(寶林寺)로 옮기게 하였습니다.

그 때 왕에게 총애 받던 신돈(辛旽)을 경계하는 글을 올리고 전주 보광사(普光寺)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1368년 신돈의 참언(讒言)으로 속리산에 금고(禁錮)되었는데, 이듬해 3월 왕이 이를 뉘우치고 다시 소설산으로 돌아오게 하였습니다. 1371년 공민왕은 그를 국사로 봉한 뒤 영원사(營原寺)에 머물기를 청하였으나 사양하였습니다. 1381년(우왕 7) 양산사(陽山寺)로 옮겼는데, 우왕은 다시 국사로 봉하였습니다.

1382년 소설산으로 돌아와서 12월 17일 입적하시니 나이 82세, 법랍 69세 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종지(宗旨)

종지란 종단이 근본으로 삼고 있는 교의와 취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이르는데 釋迦世尊의 敎理를 奉體하여 大衆行願과 六和精神을 닦아 生活과 直結된 大衆을 現代佛敎의 具現으로 安心立命, 廣度衆生,報國安民함을 目的으로 한다.